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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너를 사랑한다는 건

ranneee 2012. 2. 25. 03:19


너를 사랑한다는 건 : Kiss & Tell  -  알랭 드 보통


서장/어린 시절/초기의 데이트/가계도/부엌 전기/기억/사적인 것/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본 세상/남자와 여자/심리/결말을 찾아서/후기


한 번만 읽고서는 이해가 잘 안되는 책. 읽다가 자꾸 중간에 사색의 길로 빠져들어 다음장으로 안넘어 가는 책.

전 여자친구로부터 공감하지 못하고 귀기울이지 못하는 이기주의자라는 이유로 차인 후, 전기 작가로서 새로 만나는 애인을 탐구.


그녀의 어린 시절, 가족관계, 좋아하는 것, 프루스트적인 기억 - 그러니까 이따금 음악, 음식, 상황, 소리 등등 무언가 마주했을 때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 그녀의 ex-boyfriends, 심리테스트를 통한 그녀의 마음이나 가치관까지.

남자는 열심히 알아갔다.

그리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남자와 여자로서 다른 것과 나와 너가 세상을 보는 눈의 차이도.


사적인 것:


내가 사랑하는 나쁜 놈들, 나를 사랑하지만 결국 나는 경멸하게 되는 좋은 남자들. 그리고 최근으로 올수록, 내가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함께 있고자 노력하는 괜찮은 남자들.


보통 나는 상황을 통제하고 책임을 지고 싶어해. 하지만 나한테는 안정되고 견실한 남자의 발치에 나 자신을 던지고 싶은 면도 있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응석받이가 되도록 나를 돌봐줄 사람을 원하기도 한단 말이야.


감정생활에서만큼 사람을 터무니없이 오해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것은 사랑에 빠졌을 때만큼 상대의 성향에 몰두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며, 그때만큼 상대의 불편한 악습들을 그렇게 열심히 잊으려 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상태란 사람을 잘못 아는 것이 무엇인지, 엉터리 전기를 쓰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교묘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보고싶어서가 아니라, 다시 볼 가능성을 끝낸다는 것이 왠지 뭔가를 마지막으로 결정지어버리는 듯해 섬뜩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사벨에게 짜증스러운 존재가 된 이유는 그 자신도 완전히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감출 수밖에 없었던, 그녀에 대한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사벨의 자신에 대한 반감을 이해하려고 애썼을지 모르지만, 그의 진짜 갈등은 그 자신이 그녀에게 반감을 가지는 면을 이해할 필요에서 생겼던 것일 수도 있다. 그들 사이에는 헤어짐을 처리하기 위한 복잡한 계약이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즉, 둘 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다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를 고수할 수밖에 없다고 공모한 것이다. 앤두르는 이사벨에게 "내가 피해자가 되는 방식으로 너를 떠날게." 이사벨은 앤드루에게. "네가 떠나야 한다면, 내가 처형자라고 믿게 해줘."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본 세상 :


   우리는 똑같은 물질세계에 살면서 공통의 정의로 묶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우리의 이미지와 개념을 대체로 공유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한다. p.199


   따라서 잠시 나 자신의 사고방식에서 빠져나와 이사벨의 내적인 지도는 매우 다르게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말 그대로, 그녀의 눈으로 보면 세상이 아주 다른 곳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며 당혹스러움을 맛보아야 했다. p.200


   이런 차이들은 그냥 우연적인 것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상황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그런 뒤에 해석보다는 상황을 놓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는 방식을 증후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p.209

차이를 둘러싼 논쟁에서 객관적인 답이 없을 땐 우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의 장 후반부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내면 안에는 여러 사람이 존재하고, 차이와 연속성이 공존하고, 그치만 사람의 성격은 점진적으로 변한다... 왜 이런 내용으로 이 장을 마무리 하는걸까.


빨리 읽고싶었다. 이 여자와 어떻게 헤어지게 되는지, 그리고 남자는 어떻게 이 만남을 정리하는지 알고싶어서.


결말을 찾아서 :


좋은 전기를 쓰는 기술은 언제 멈출지 아는 것으로 규정될지도 모른다.  p.295

어떤 사람의 행동이 중요할수록 그 사람의 하찮은 것(혹은, 세세하고 특수한 것)들도 흥미를 자아낸다. p.301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해도 상상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전기가 묘사하는 인생만큼 긴 책을 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축척을 줄일 수밖에 없다. ~

엉뚱한 것을 고르거나 충분한 양을 고르지 못하면, 희화하했다거나 때 일르게 결말을 지었다는 반갑지 않은 비난을 받을 수 도 있다.

"너는 늘 나한테 이러더라."   p.305


지나치게 집어넣거나 아니면 미흡하게 집어넣는 두 전기의 위험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 있는 상황에서는 분명한 그림을 제공하려는 욕심에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는 것과 너무 적게 말해 상투적인 모습밖에 제공하지 못하는 것 사이의 아슬아슬한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p.309


전기 쓰기를 중단할 적절한 순간이라는 증거는 (중략) 굳이 가서 확인할 필요도 없이, 어떤 사람이 어떤 것에 어떻게 반응할 지 정확하게 아는것. 이것이 어떤 사람을 충분히 잘 안다는 완벽한 상징 아닐까?  p.316

내가 그 사람의 다음 반응까지 모두 안다는 자만심, 혹은 착각으로 더이상 그 사람의 전기를 쓰지 않는다. 더이상 주의깊게 관찰하지 않는다.



후기 :

이사벨의 정신 기능 가운데는 공감이라는 수준에서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우리의 차이를 존중하자는 슬픈 결정으로 만족해야 하는 영역들이 있엇다. 왜 슬픈냐고? 차이를 존중한다고 으스대며 말하는 것은 사실 자신이 이햐할 수 없는 것, 따라서 솔직히 말하면 논리적으로 존중할 수 없는 것을 존중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악하지도 못하는 것의 가치를 어떻게 존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심리적으로 이해 못하는 것 외에도, 사실의 수준에서 내가 절대 알 수 없는 잡다한 것들이 있었다. 이런 무지는 안타까운 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어쩌면 자연스러운 학습 곡선을 따른 것일 수도 있었다.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우리가 그 사람에게서 구하고 끌어내는 정보의 양은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관계가 진전되면 불행한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친밀함이 점점 심오해지는 주제에 관한 더 긴 대화의 촉매가 되기는커녕, 외려 정반대의 시나리오를 펼쳐놓는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에게 말할 기회가 많아질수록, 실제로는 말을 덜하게 된다는 역설.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는 시간이 무제한이라면, 사과 크럼블이나 물이 완전히 안 잠기는 수도꼭지 이야기를 다 하기도 전에 굳이 거창한 화제로 나아갈 이유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인생을 공유하고 있다면, 거창한 질문으로 인한 격변은 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다른 사람이 손아귀 안에 있다면 굳이 키르케고르의 아이러니 이론에 대한 관점 같은 상대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을 통하여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을 얻을 필요가 사라지는 것이다.


더욱이 어떤 사람을 오래 알 수록 그 사람에 관한 어떤 것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더 수치스러운 일이 된다. 일정한 기간만 지나고 나면, 서로의 개의 이름, 또는 아이나 아버지나 직업을 모른다는 것 때문에 이제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이질감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불쾌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한테는 나도 이해 못하는 게 많아. 솔직히 말하면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도 많고. 나한테는 나 자신도 납득할 수 없고 당연히 너한테도 납득이 안 될 괴상한 것들이 가득해."

결국 남자는 여자의 힌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귀기울이지 못해서, 공감하지 못해서 똑같은 이유로 헤어지자는 말을 듣고 만다. 열심히 알고자는 했지만.




안다, 이해한다, 공감한다, 사랑한다.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건 내가 이미 이만큼 알고있다는 자만감으로부터 온 걸까?

그렇다면 사랑의 콩깍지가 씌여있었을 땐, 그래서 서로에게 호기심이 충만하고 알아가느라 정신없을 때. 그때의 공감한다라는 동사는 얼마나 진실된 것이었을까.


마음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과 사랑이 식었다는 것은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는 것일까.


오래갈 수 있는 사랑은, 헤어질 걱정 없이 싸울 수 있다고 한다.

사랑을 지켜나가는 방법은, 싸움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화해에 대한 믿음이 있고. 이해와 공감에 끝없는 노력을 들이며, 다 알고있다고 자만하지 않는 것의 조화가 아닐까.

이 균형이 깨졌을 때, 사랑도 깨어지는걸까.


그러면 그는 그 정도만큼만 나를 사랑했던 걸까. 나는 '공감한다'에 큰 괴리를 느꼈다. 혹은 이렇게 우리가 오래 알아왔는데, 몇 번이나 말해두었는데도 불구하고도 기억하지 않는단 것이 참 속상했다. 그도 그렇게 느꼈던 걸까. 어떤 환경에서도 그의 마음이 불변하리라는 믿음이 나를 자만하게 하고, 공감하는데에 문제가 생겼다.


사랑하는 마음의 정도가 사랑을 지키는데 노력하는 정도를 결정하는 걸까, 아니면 그 노력이 사랑을 결정하는 걸까.

사랑은 언제 끝나는 걸까.




쉽게 읽히지 않고 지루하단 평도 안고있지만,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스타일이 좋다.



덧.

친구와 애인의 다른 점은 뭘까. 성적 관계를 제외한다면. 둘 다 애증의 관계임은 분명한데, 

왜 친구의 다름은 인정할 수 있어도 애인의 다름은 쉽사리 인정할 수 없는 걸까.

다름을 인정하는 것.

내가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과 상대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

이해라기 보다는 공감쪽에 가까우려나. 이해와 공감의 차이는 뭘까.

그렇다면 이렇게 다름을 인정하는 관계는 무관심과 얼마나 다른걸까.



같이 이야기 하고 싶은게 너무 많다. 늘 네 생각은 어때 하고 이야기 했으니까. 그치만 이제 말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 너무 많은 부분을 주어버렸나.


한동안 내가 얼마나 인간관계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고 대해왔는지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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